2024년 2월 22일 목요일 오전 10시.
더불어민주당이 불공정 공천으로 비판받고, 일본이 독도가 일본 땅이라는 억지 주장을 반복했다는 뉴스가 흐르는, 밤새 내린 눈으로 나뭇잎이 백발로 변한 아침. 서비스 기획 일을 하는 정훈 님을 잠실에서 만났다.
인터뷰이 소개
모정훈. 10년 차 직업인.
순도 100% 직업인이 되고 싶어서 자신과 구분되는 수많은 것과 싸워왔다. 그 사이 쌓인 취향을 보다 뚜렷하게 세우고 싶어 알고리즘과 이별했으며 창작자로서의 가능성을 확인하기 위해 긴 글을 쓰기 시작했다. 스트레스가 뻗치는 날이면 책을 사고 무엇이든, 자신이 원한 것을 이뤄낸 순간을 기록하는 좋은 습관을 지녔다.
“처음에는 재밌을 듯해서 응했는데, 인터뷰 일정이 가까워지면서 ‘이 주제로 내가 어떤 이야기를 할 수 있을까?’ 의문이 들었어요.”
“더퍼슨스의 주제가 직업인데요. 기획 회의를 하다가 이런 질문이 떠올랐어요. ‘전문가의 이야기만 중요할까?’, ‘모든 실무자가 각자의 방식으로 전문가가 아닐까?’. 독자분들의 일 이야기가 궁금해진 거예요.”
“그렇군요.”
정훈 님은 자신이 어떤 모습으로 일하는지 알까?
“정훈 님은 자신이 일하는 모습을 볼 수 없죠. 거울을 앞에 두고 일하지 않는 이상요. 회의를 하다가 회의실 유리창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볼 수는 있겠네요."
“어제, 질문지를 보고 잠시 생각했어요. ‘나는 어떻게 일하고 있나?’. 동료들과 대화를 거의 하지 않고 일에 몰두하는 편이였어요. 주변의 오고 가는 이야기에 신경 쓰지 않았죠. ‘그럼 남들은 나를 어떻게 보고 있지?’. 궁금하더군요. 주변 사람들이 저에게 하는 말이 있어요. ‘바쁘시죠?’. 늘 그 말을 먼저 해요. ‘나는 항상 바쁘게 일하는 사람이구나’ 싶었어요.
“정훈 님의 자리는 어디인가요?”
“창가 쪽이에요.”
“일하면서 밖을 볼 수 있겠어요. 창밖을 보면서 생각을 환기하거나 마음을 전환하나요?”
“창가에 자리 잡기 전에는 안쪽에 앉았어요. 사방이 통유리로 된 공간 안에 머물렀죠. 어느 날, 일하는 동안 밖을 한 번도 쳐다보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어요. 때가 낮인지 밤인지 인식하지 못했죠. 안 되겠다 싶어 창가 쪽에 앉기 시작한 거예요. 여전히 의식적으로 밖을 보지는 않는데 요즘은 낮과 밤의 변화를 느끼고 있어요(웃음).”
“저라면 종종 창밖을 바라보며 상념에 잠길 듯한데 정훈 님은 노트북만 보는군요(웃음).”
정훈 님은 하루를 어떻게 시작할까?
“출근길에는 전자책이나 지식 플랫폼 콘텐츠를 쭉 읽어요. OTT 시리즈를 한 편 보기도 하고요. 1시간 20분 정도로 출근 소요 시간이 긴 편이었거든요. 9시쯤 회사에 도착하면 그날 할 일을 확인하고 제가 하고 싶어서 기획한 일을 진행하는 편이에요. 직원분들 대부분 출근하는 시간이 10시라서 본격적인 업무가 시작되기 전에 ‘제 일’에 집중하는 시간을 갖죠.
“점심시간은 몇 시예요?”
“12시인데 제대로 안 지켜요. 일에 집중하면 시간이 어떻게 가는지 몰라서요. 우선순위를 정한다면 밥보다 일이 먼저예요. 할 일을 끝내고 편하게 밥을 먹고 싶거든요. 야근할 때도 비슷해요. 근로 시간에 맞춰 퇴근하기보다는 할 일을 끝내고 퇴근해요.”
“자발적 야근이네요.”
“그날 해야 하는 일을 끝낸 다음 집에서 편하게 쉬고 싶거든요(웃음). 그렇게 해야 다음날 덜 피곤해요.”
“저에게는 하루 만에 끝낼 수 없는 일들이 대부분인데(웃음).”
“회사의 업무 속도와 관련 있어요. 아침에 나온 안건에 대해 저녁에는 결과물의 윤곽이 나와야 하거든요. 그래야 다음날 아침 회의 때 보여 줄 게 있어요. 이렇게 할 때 참 뿌듯해요. 반면에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는 경우도 있는데, 그때는 제 몫을 다하지 못했다고 자책하죠."
“야근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동안에는 어떤 감정이 드나요?”
“일과에 대한 감정이 자연스럽게 올라오는데요. 그 또한 일의 연장선이라 보기 때문에 딱 끊어내요. 그럼에도 출근할 때처럼 무엇에 집중하지는 못해요. 아무 생각 없이 영화나 드라마를 봐요.”
“집중할 수 있는 에너지를 모두 써버렸으니까요. 출근길 기분은 주로 어떤가요?”
“업무 중에 현장에서 영업하는 분들의 요청에 응대하는 일이 있어요. 급할 경우 출근해서 바로 해결해야 하기 때문에 출근길에 어떻게 이야기해야 할지 생각할 때가 있는데요. 이때 긴장을 해요. 단순히 된다, 안 된다는 식으로 이야기할 수 없거든요. 본사가 고수하는 입장을 풀어서 논리적으로 설명해야 하는데, 스스로 논리가 비약하다고 판단하면 불안해하는 거예요.”
정훈 님은 무슨 일을 할까?
“음식 배달 플랫폼에서 각 도시의 배달 지역을 최적으로 설정하는 일을 해요. 쉽게 말해 불필요한 동선을 줄이죠. 다만 시장 점유율을 확보하기 위해서 일정 기준만큼 배달 권역을 유지해야 하는데요. 여기서 현장과 본사의 입장 차이가 발생해요. 영업하는 입장에서는 계약 성사를 위해 배달 대행업체의 요구에 맞춰 권역을 줄이려 하지만 본사에서는 넓히려고 하죠. 그럼 그 사이에서 협의점을 찾아야 해요. 저는 본사를 대변하는 입장이기에 보수적으로 접근하지만 계약을 따내는 것도 중요하기에 대안을 제시하죠. 권역을 줄이지 않는 대신 다른 부분으로 보상할 수 있는 방법을요. 기본 수수료를 인상하거나 프로모션 형태로 단 기간 수수료를 높이는 식으로요. 이 일을 실시간으로 해요.”
“급한 일인가요?”
“당일 수익에 따라 라이더 분들이 민감하게 반응하거든요. 가령 오늘, 어제보다 배달 거리가 먼 곳을 다녀오면 자연히 배달 건수가 줄겠죠. 수익이 어제보다 줄어드는 거예요. 그럼 바로 저희 플랫폼에서 이탈해버려요. 그분들의 계산에 따라 정말 순식간에 일어나는 일이라 예측할 수도 없고요. 발생했을 때 빠르고 정확한 판단을 내려 조치하는 수밖에 없어요.”
“그 판단은 정훈 님이 곧장 내리는 거예요?”
“팀장님을 비롯해 팀이 총 4명인데요. 누군가 혼자서 전국을 관리할 수는 없으니까 나눠서 해요. 제가 담당한 지역은 제가 결정을 내리죠. 데이터 대시보드를 활용해서요. 정보만 입력하면 저희가 배달 대행사에 지불할 수수료의 예상 금액이 나와요. 다만 지역마다, 대행업체마다 측정 기준이 다르기 때문에 데이터들을 혼합하는 과정을 거쳐요. 평균치를 보는 거죠. 그렇게 해서 회사 입장에서는 낭비하지 않는, 대행업체 입장에서는 구미가 당길 수 있는 금액을 산정해서 제안해요.”
“라이더 이탈 현상은 주말에도 발생할 텐데요. 설마 주말에도 즉각 응대하나요?”
“최근, 주말에 해당 업무를 전담하는 팀이 생겼어요. 그전에는 주말에 당직 형태로 돌아가면서 일을 처리했고요. 입사 당시에는 IT 기반 회사이니까 전반적으로 자동화 시스템이 구축되어 있을 거라 생각했어요. 입사 전, 회사 플랫폼을 이용하는 고객일 때도 그럴 거라 생각했는데요. 아니더라고요. 자동화되기 전까지는 많은 인력이 계속 투여 된다는 것을 일하면서 체감했죠. 오늘같이 눈 오는 날은 비상이에요. 배달 건수가 급증하는데 사고 위험이 커서 쉬는 라이더 분들이 있거든요. 라이더 분들을 한 명이라도 확보하기 위해 지금 팀에서는 민감하게 수수료를 조정하고 있어요.”
“그럼 사무실에 들어가야 하는 거 아닌가요?”
“반차를 사용했어요.”
“인터뷰 때문이에요?”
“네. 밤새 눈이 내릴 줄은 몰랐죠(웃음).”
정훈 님은 커리어를 어떻게 이어 왔을까?
“오랫동안 영업관리직에 몸담았어요. 편의점과 의류 브랜드 매장을 관리했죠. 본사 기획을 현장에서 실행하는 역할로, 점주분들과 매장 건물주분들을 만나 설득하는 일이 주였죠. 현장에 반하는 기획들을 마주하면서 ‘내가 서비스를 기획하면 본사와 현장의 간극을 줄일 수 있지 않을까?’, ‘현장 경험이 많은 만큼 잘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하기도 했네요. 지금 다니는 회사에 이직했을 때도 영업관리직으로 지원했는데, 때마침 사업 조직이 개편되면서 권역 관리 일을 맡게 된 거예요.”
“우연한 계기로 인해 본인이 하고 싶은 일을 하게 됐네요. ’서비스 기획‘의 매력은 뭘까요?”
“제가 기획한 대로 서비스가 현장에서 실행된다는 거예요. 그에 따라 서비스 품질이 개선되고 그 결과를 수치로 확인할 수 있는 점도요. 제대로 실행되지 못했을 때 미흡한 부분에 대해 피드백을 받는 것도 포함하고요. 직업인으로서의 가치를 느끼는 순간들이죠.”
“직무의 한계를 발견한 적도 있나요?”
"주어진 예산안에서 실행해야 한다는 점을 들 수 있겠네요. 오랜 현장 경험을 토대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기획을 구상하더라도 예산 때문에 못하는 경우가 있어요. 아쉬운 부분이죠. 사실 재무는 제가 놓치는 부분이기도 해요. 지식과 경험이 없으니까요. 그래서 재무팀에서 일하고 싶은 생각이 들더라고요(웃음)."
“만약 회사 내에서 다른 직무로 이동할 수 있다면 어떤 일을 하고 싶은지에 대한 답이군요.”
"맞아요. 재무 지식이 있다면 단기가 아닌 중, 장기적인 관점으로 예산을 집행할 것 같거든요. 재무에 무지한 상태로 서비스를 기획한다는 것이 어불성설 아닌가 싶고요. 회사의 자금 흐름을 한 번 보고 싶은 마음도 있어요."
"업무 도중 생겨난 새로운 일에 대한 욕구는 늘 신선해요."
정훈 님에게 회사와 조직은 어느 정도의 무게일까?
"회사가 만든 플랫폼이 있어야 제가 일할 수 있기 때문에 당연히 회사는 있어야 된다고 보는데요. 조직이 반드시 필요한지는 모르겠네요. 구성원 모두가 하는 일이 다 다를뿐더러 개인의 역량으로 일해 나가는 체계이거든요. 조직이 다 같이 무언가를 이뤄가는 형태는 아닌 거죠. 이는 주로 경력자들이 모인 조직 특성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입사하자마자 일정 수준 이상의 성과를 낼 수 있으니 개인 역량에 따라 의사 결정을 빠르게 하고 결과도 빠르게 내죠."
"가장 보람을 느낀 순간은 언제인가요?”
“예산 낭비를 막았던 적이 있어요.”
“예산과 인연이 있네요(웃음).”
“지방으로 사업을 확장하던 시기의 일이에요. 서울에서 운영하는 수수료 지급 체계를 그대로 지방에 적용하니 낭비되는 비용이 있더라고요. 지방은 서울과 다르게 도로가 잘 닦여 있지 않고 자연과 밀접한 환경이었기 때문에 그에 맞는 시스템이 필요했던 거죠. 그래서 프로덕트 팀, 데이터 분석팀과 힘을 모아 문제를 제기했어요. 일률적으로 지급하던 수수료를 지역마다 배송 난이도를 설정해서 차등으로 지급하자고요. 2023년 말에 실행 결과를 확인하니 확실히 예산이 적게 사용됐더라고요. 제 시도가 헛되이 사라지지 않았다는 것 즉 분명한 수치로 남았다는 점에서 보람을 느꼈어요.”
“회사에서 보상이 있었나요?”
“특별한 보상은 없었어요. 제 만족이 컸죠.”
"가장 숨 막혔던 순간도 있었을까요?"
"최근 일인데요. 지방의 어느 배달 대행사가 갑자기 계약 철회를 요구했어요. 해당 지역의 배달 권역이 넓어졌는데, 라이더 분들이 하루 운행해 보니까 감당할 수 없는 수준이었던 거죠. 저희가 운영하던 지역이었으니까 기존 데이터를 바탕으로 재편을 했는데 현실과 동떨어져 있었던 거예요. 지방으로 사업을 긴박하게 확장하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더 빠르게 수습해야 했어요. 그래서 숨이 막혔죠. 다시 데이터를 확인하니 변수에 따라 결괏값이 바뀌는 에지 케이스(Edge case)가 많았는데, 제가 그것들을 골라내지 않은 상태로 데이터를 분석해 판단을 내렸더라고요."
"데이터를 확인하면서 아찔했을 것 같아요. 위와 같은 위급 상황에서는 도움을 줄 수 있는 누군가가 필요하죠."
"서비스 기획 일을 하면서 도움의 필요성을 느꼈어요. 데이터를 분석하려면 툴을 다룰 줄 알아야 하는데 모르니까 어렵더라고요. 이를 계기로 공학을 전공한 동료에게 툴을 배우거나 온라인 교육 플랫폼에서 SQL, 파이썬을 공부하고 있어요."
정훈 님은 자신의 전문성을 몇 %라고 생각할까?
"서비스 기획의 전문성을 어떤 식으로 설명할 수 있을까요?"
"특정 위기 상황이나 예상치 못한 위험이 발생할 경우 거기에 휘둘리지 않고 대안을 제시할 수 있는 거예요. 일을 크게 벌이지 않으면서 플랜 B, 플랜 C를 가동할 수 있는 능력이죠. 직장인이니까, 월급을 받으니까 당연히 해야 하는, 매출을 발생하는 일을 제대로 하는 것은 당연하다고 보고요. 여기에는 정형화된 방식이 있기 때문에 전문성을 대입하기는 어렵다고 생각해요."
"방금 말한 전문성을 100%로 본다면 정훈 님은 몇 % 인 것 같나요?"
"60% 정도예요. 현장 경험이 어느 정도 있기 때문에 위험이 발생한 상황에서 가드레일 수준으로 대안을 제시할 수 있거든요."
정훈 님이 진짜 하고 싶은 '일'과 더퍼슨스 책에 대한 이야기가 Part 2로 이어집니다.
2024년 2월 22일 목요일 오전 10시.
더불어민주당이 불공정 공천으로 비판받고, 일본이 독도가 일본 땅이라는 억지 주장을 반복했다는 뉴스가 흐르는, 밤새 내린 눈으로 나뭇잎이 백발로 변한 아침. 서비스 기획 일을 하는 정훈 님을 잠실에서 만났다.
인터뷰이 소개
모정훈. 10년 차 직업인.
순도 100% 직업인이 되고 싶어서 자신과 구분되는 수많은 것과 싸워왔다. 그 사이 쌓인 취향을 보다 뚜렷하게 세우고 싶어 알고리즘과 이별했으며 창작자로서의 가능성을 확인하기 위해 긴 글을 쓰기 시작했다. 스트레스가 뻗치는 날이면 책을 사고 무엇이든, 자신이 원한 것을 이뤄낸 순간을 기록하는 좋은 습관을 지녔다.
“처음에는 재밌을 듯해서 응했는데, 인터뷰 일정이 가까워지면서 ‘이 주제로 내가 어떤 이야기를 할 수 있을까?’ 의문이 들었어요.”
“더퍼슨스의 주제가 직업인데요. 기획 회의를 하다가 이런 질문이 떠올랐어요. ‘전문가의 이야기만 중요할까?’, ‘모든 실무자가 각자의 방식으로 전문가가 아닐까?’. 독자분들의 일 이야기가 궁금해진 거예요.”
“그렇군요.”
정훈 님은 자신이 어떤 모습으로 일하는지 알까?
“정훈 님은 자신이 일하는 모습을 볼 수 없죠. 거울을 앞에 두고 일하지 않는 이상요. 회의를 하다가 회의실 유리창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볼 수는 있겠네요."
“어제, 질문지를 보고 잠시 생각했어요. ‘나는 어떻게 일하고 있나?’. 동료들과 대화를 거의 하지 않고 일에 몰두하는 편이였어요. 주변의 오고 가는 이야기에 신경 쓰지 않았죠. ‘그럼 남들은 나를 어떻게 보고 있지?’. 궁금하더군요. 주변 사람들이 저에게 하는 말이 있어요. ‘바쁘시죠?’. 늘 그 말을 먼저 해요. ‘나는 항상 바쁘게 일하는 사람이구나’ 싶었어요.
“정훈 님의 자리는 어디인가요?”
“창가 쪽이에요.”
“일하면서 밖을 볼 수 있겠어요. 창밖을 보면서 생각을 환기하거나 마음을 전환하나요?”
“창가에 자리 잡기 전에는 안쪽에 앉았어요. 사방이 통유리로 된 공간 안에 머물렀죠. 어느 날, 일하는 동안 밖을 한 번도 쳐다보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어요. 때가 낮인지 밤인지 인식하지 못했죠. 안 되겠다 싶어 창가 쪽에 앉기 시작한 거예요. 여전히 의식적으로 밖을 보지는 않는데 요즘은 낮과 밤의 변화를 느끼고 있어요(웃음).”
“저라면 종종 창밖을 바라보며 상념에 잠길 듯한데 정훈 님은 노트북만 보는군요(웃음).”
정훈 님은 하루를 어떻게 시작할까?
“출근길에는 전자책이나 지식 플랫폼 콘텐츠를 쭉 읽어요. OTT 시리즈를 한 편 보기도 하고요. 1시간 20분 정도로 출근 소요 시간이 긴 편이었거든요. 9시쯤 회사에 도착하면 그날 할 일을 확인하고 제가 하고 싶어서 기획한 일을 진행하는 편이에요. 직원분들 대부분 출근하는 시간이 10시라서 본격적인 업무가 시작되기 전에 ‘제 일’에 집중하는 시간을 갖죠.
“점심시간은 몇 시예요?”
“12시인데 제대로 안 지켜요. 일에 집중하면 시간이 어떻게 가는지 몰라서요. 우선순위를 정한다면 밥보다 일이 먼저예요. 할 일을 끝내고 편하게 밥을 먹고 싶거든요. 야근할 때도 비슷해요. 근로 시간에 맞춰 퇴근하기보다는 할 일을 끝내고 퇴근해요.”
“자발적 야근이네요.”
“그날 해야 하는 일을 끝낸 다음 집에서 편하게 쉬고 싶거든요(웃음). 그렇게 해야 다음날 덜 피곤해요.”
“저에게는 하루 만에 끝낼 수 없는 일들이 대부분인데(웃음).”
“회사의 업무 속도와 관련 있어요. 아침에 나온 안건에 대해 저녁에는 결과물의 윤곽이 나와야 하거든요. 그래야 다음날 아침 회의 때 보여 줄 게 있어요. 이렇게 할 때 참 뿌듯해요. 반면에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는 경우도 있는데, 그때는 제 몫을 다하지 못했다고 자책하죠."
“야근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동안에는 어떤 감정이 드나요?”
“일과에 대한 감정이 자연스럽게 올라오는데요. 그 또한 일의 연장선이라 보기 때문에 딱 끊어내요. 그럼에도 출근할 때처럼 무엇에 집중하지는 못해요. 아무 생각 없이 영화나 드라마를 봐요.”
“집중할 수 있는 에너지를 모두 써버렸으니까요. 출근길 기분은 주로 어떤가요?”
“업무 중에 현장에서 영업하는 분들의 요청에 응대하는 일이 있어요. 급할 경우 출근해서 바로 해결해야 하기 때문에 출근길에 어떻게 이야기해야 할지 생각할 때가 있는데요. 이때 긴장을 해요. 단순히 된다, 안 된다는 식으로 이야기할 수 없거든요. 본사가 고수하는 입장을 풀어서 논리적으로 설명해야 하는데, 스스로 논리가 비약하다고 판단하면 불안해하는 거예요.”
정훈 님은 무슨 일을 할까?
“음식 배달 플랫폼에서 각 도시의 배달 지역을 최적으로 설정하는 일을 해요. 쉽게 말해 불필요한 동선을 줄이죠. 다만 시장 점유율을 확보하기 위해서 일정 기준만큼 배달 권역을 유지해야 하는데요. 여기서 현장과 본사의 입장 차이가 발생해요. 영업하는 입장에서는 계약 성사를 위해 배달 대행업체의 요구에 맞춰 권역을 줄이려 하지만 본사에서는 넓히려고 하죠. 그럼 그 사이에서 협의점을 찾아야 해요. 저는 본사를 대변하는 입장이기에 보수적으로 접근하지만 계약을 따내는 것도 중요하기에 대안을 제시하죠. 권역을 줄이지 않는 대신 다른 부분으로 보상할 수 있는 방법을요. 기본 수수료를 인상하거나 프로모션 형태로 단 기간 수수료를 높이는 식으로요. 이 일을 실시간으로 해요.”
“급한 일인가요?”
“당일 수익에 따라 라이더 분들이 민감하게 반응하거든요. 가령 오늘, 어제보다 배달 거리가 먼 곳을 다녀오면 자연히 배달 건수가 줄겠죠. 수익이 어제보다 줄어드는 거예요. 그럼 바로 저희 플랫폼에서 이탈해버려요. 그분들의 계산에 따라 정말 순식간에 일어나는 일이라 예측할 수도 없고요. 발생했을 때 빠르고 정확한 판단을 내려 조치하는 수밖에 없어요.”
“그 판단은 정훈 님이 곧장 내리는 거예요?”
“팀장님을 비롯해 팀이 총 4명인데요. 누군가 혼자서 전국을 관리할 수는 없으니까 나눠서 해요. 제가 담당한 지역은 제가 결정을 내리죠. 데이터 대시보드를 활용해서요. 정보만 입력하면 저희가 배달 대행사에 지불할 수수료의 예상 금액이 나와요. 다만 지역마다, 대행업체마다 측정 기준이 다르기 때문에 데이터들을 혼합하는 과정을 거쳐요. 평균치를 보는 거죠. 그렇게 해서 회사 입장에서는 낭비하지 않는, 대행업체 입장에서는 구미가 당길 수 있는 금액을 산정해서 제안해요.”
“라이더 이탈 현상은 주말에도 발생할 텐데요. 설마 주말에도 즉각 응대하나요?”
“최근, 주말에 해당 업무를 전담하는 팀이 생겼어요. 그전에는 주말에 당직 형태로 돌아가면서 일을 처리했고요. 입사 당시에는 IT 기반 회사이니까 전반적으로 자동화 시스템이 구축되어 있을 거라 생각했어요. 입사 전, 회사 플랫폼을 이용하는 고객일 때도 그럴 거라 생각했는데요. 아니더라고요. 자동화되기 전까지는 많은 인력이 계속 투여 된다는 것을 일하면서 체감했죠. 오늘같이 눈 오는 날은 비상이에요. 배달 건수가 급증하는데 사고 위험이 커서 쉬는 라이더 분들이 있거든요. 라이더 분들을 한 명이라도 확보하기 위해 지금 팀에서는 민감하게 수수료를 조정하고 있어요.”
“그럼 사무실에 들어가야 하는 거 아닌가요?”
“반차를 사용했어요.”
“인터뷰 때문이에요?”
“네. 밤새 눈이 내릴 줄은 몰랐죠(웃음).”
정훈 님은 커리어를 어떻게 이어 왔을까?
“오랫동안 영업관리직에 몸담았어요. 편의점과 의류 브랜드 매장을 관리했죠. 본사 기획을 현장에서 실행하는 역할로, 점주분들과 매장 건물주분들을 만나 설득하는 일이 주였죠. 현장에 반하는 기획들을 마주하면서 ‘내가 서비스를 기획하면 본사와 현장의 간극을 줄일 수 있지 않을까?’, ‘현장 경험이 많은 만큼 잘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하기도 했네요. 지금 다니는 회사에 이직했을 때도 영업관리직으로 지원했는데, 때마침 사업 조직이 개편되면서 권역 관리 일을 맡게 된 거예요.”
“우연한 계기로 인해 본인이 하고 싶은 일을 하게 됐네요. ’서비스 기획‘의 매력은 뭘까요?”
“제가 기획한 대로 서비스가 현장에서 실행된다는 거예요. 그에 따라 서비스 품질이 개선되고 그 결과를 수치로 확인할 수 있는 점도요. 제대로 실행되지 못했을 때 미흡한 부분에 대해 피드백을 받는 것도 포함하고요. 직업인으로서의 가치를 느끼는 순간들이죠.”
“직무의 한계를 발견한 적도 있나요?”
"주어진 예산안에서 실행해야 한다는 점을 들 수 있겠네요. 오랜 현장 경험을 토대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기획을 구상하더라도 예산 때문에 못하는 경우가 있어요. 아쉬운 부분이죠. 사실 재무는 제가 놓치는 부분이기도 해요. 지식과 경험이 없으니까요. 그래서 재무팀에서 일하고 싶은 생각이 들더라고요(웃음)."
“만약 회사 내에서 다른 직무로 이동할 수 있다면 어떤 일을 하고 싶은지에 대한 답이군요.”
"맞아요. 재무 지식이 있다면 단기가 아닌 중, 장기적인 관점으로 예산을 집행할 것 같거든요. 재무에 무지한 상태로 서비스를 기획한다는 것이 어불성설 아닌가 싶고요. 회사의 자금 흐름을 한 번 보고 싶은 마음도 있어요."
"업무 도중 생겨난 새로운 일에 대한 욕구는 늘 신선해요."
정훈 님에게 회사와 조직은 어느 정도의 무게일까?
"회사가 만든 플랫폼이 있어야 제가 일할 수 있기 때문에 당연히 회사는 있어야 된다고 보는데요. 조직이 반드시 필요한지는 모르겠네요. 구성원 모두가 하는 일이 다 다를뿐더러 개인의 역량으로 일해 나가는 체계이거든요. 조직이 다 같이 무언가를 이뤄가는 형태는 아닌 거죠. 이는 주로 경력자들이 모인 조직 특성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입사하자마자 일정 수준 이상의 성과를 낼 수 있으니 개인 역량에 따라 의사 결정을 빠르게 하고 결과도 빠르게 내죠."
"가장 보람을 느낀 순간은 언제인가요?”
“예산 낭비를 막았던 적이 있어요.”
“예산과 인연이 있네요(웃음).”
“지방으로 사업을 확장하던 시기의 일이에요. 서울에서 운영하는 수수료 지급 체계를 그대로 지방에 적용하니 낭비되는 비용이 있더라고요. 지방은 서울과 다르게 도로가 잘 닦여 있지 않고 자연과 밀접한 환경이었기 때문에 그에 맞는 시스템이 필요했던 거죠. 그래서 프로덕트 팀, 데이터 분석팀과 힘을 모아 문제를 제기했어요. 일률적으로 지급하던 수수료를 지역마다 배송 난이도를 설정해서 차등으로 지급하자고요. 2023년 말에 실행 결과를 확인하니 확실히 예산이 적게 사용됐더라고요. 제 시도가 헛되이 사라지지 않았다는 것 즉 분명한 수치로 남았다는 점에서 보람을 느꼈어요.”
“회사에서 보상이 있었나요?”
“특별한 보상은 없었어요. 제 만족이 컸죠.”
"가장 숨 막혔던 순간도 있었을까요?"
"최근 일인데요. 지방의 어느 배달 대행사가 갑자기 계약 철회를 요구했어요. 해당 지역의 배달 권역이 넓어졌는데, 라이더 분들이 하루 운행해 보니까 감당할 수 없는 수준이었던 거죠. 저희가 운영하던 지역이었으니까 기존 데이터를 바탕으로 재편을 했는데 현실과 동떨어져 있었던 거예요. 지방으로 사업을 긴박하게 확장하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더 빠르게 수습해야 했어요. 그래서 숨이 막혔죠. 다시 데이터를 확인하니 변수에 따라 결괏값이 바뀌는 에지 케이스(Edge case)가 많았는데, 제가 그것들을 골라내지 않은 상태로 데이터를 분석해 판단을 내렸더라고요."
"데이터를 확인하면서 아찔했을 것 같아요. 위와 같은 위급 상황에서는 도움을 줄 수 있는 누군가가 필요하죠."
"서비스 기획 일을 하면서 도움의 필요성을 느꼈어요. 데이터를 분석하려면 툴을 다룰 줄 알아야 하는데 모르니까 어렵더라고요. 이를 계기로 공학을 전공한 동료에게 툴을 배우거나 온라인 교육 플랫폼에서 SQL, 파이썬을 공부하고 있어요."
정훈 님은 자신의 전문성을 몇 %라고 생각할까?
"서비스 기획의 전문성을 어떤 식으로 설명할 수 있을까요?"
"특정 위기 상황이나 예상치 못한 위험이 발생할 경우 거기에 휘둘리지 않고 대안을 제시할 수 있는 거예요. 일을 크게 벌이지 않으면서 플랜 B, 플랜 C를 가동할 수 있는 능력이죠. 직장인이니까, 월급을 받으니까 당연히 해야 하는, 매출을 발생하는 일을 제대로 하는 것은 당연하다고 보고요. 여기에는 정형화된 방식이 있기 때문에 전문성을 대입하기는 어렵다고 생각해요."
"방금 말한 전문성을 100%로 본다면 정훈 님은 몇 % 인 것 같나요?"
"60% 정도예요. 현장 경험이 어느 정도 있기 때문에 위험이 발생한 상황에서 가드레일 수준으로 대안을 제시할 수 있거든요."
정훈 님이 진짜 하고 싶은 '일'과 더퍼슨스 책에 대한 이야기가 Part 2로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