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외를 두지 않고 하나의 틀을 유지하려는 업무 방식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회사 기조를 바탕으로 영업 체계를 만드는 입장에서 예외를 받아들이면, 영업하시는 분들이 힘들어요. 바뀌는 기준에 따라 자꾸 말을 번복할 수밖에 없으니까요. 현장에서 회사를 대표하는 분들을 거짓말쟁이로 만들 수는 없죠."
"C-Level에서 예외성을 적용하라는 경우도 있지 않나요?"
"그럼 한 번은 물어봐요. 사업 콘셉트가 제가 생각하는 것과 같은 지를요. 제가 만든 서비스에는 해당 사업을 이해한 제 관점이 반영되어 있으니까요. 제가 착각했다면 고칠 필요가 있고요. 제가 제대로 이해하고 있지만 C-Leve에서 상황을 유연하게 보자고 이야기한다면 고집부리지는 않아요. 본사와 현장 사이에서 제가 장애요소가 될 수 있거든요."
"일을 방해하는 단점이 있을까요?"
"감정을 최대한 억누르려고 하는데 쉽지 않아요. 특히 회의할 때 그래요. 제 의견에 반대하는 입장이 나타나면 ‘왜 안 된다고 하는 거지?’라는 의문이 들면서 상대방에게 언성을 높이죠. 뒤돌아 후회하고요. ‘내 의견을 고수하기 위해서 그렇게까지 이야기할 필요가 있었을까?’. 제가 표현하고 싶은 대로 감정을 드러냈지만 기분이 좋지는 않아요. 반대 의견을 수용하는 게 어렵네요."
"저도 같아요. 일할 때 감정을 조절하는 일이 세상에서 제일 어려워요."
잠실, 선릉이 아닌 다른 곳에서 일할 수 있다면 정훈 님은 어디에서 일하고 싶을까?
"베를린이요. 일과 연관성은 없지만(웃음)."
"이유가 있겠죠(웃음)."
"새로운 서비스를 구상하려면 새로운 아이디어가 필요한데요. 새로운 환경이 도움을 주지 않을까 싶어요. 명확하게 설명할 수 없지만 베를린이 그에 적합한 환경을 갖추었다고 보고요."
"베를린을 경험한 적 있나요?"
"신혼여행 때요(웃음). 베를린에서 일하는 한국인들의 이야기를 다룬 <요즘사> 콘텐츠를 보면서 ‘저런 환경에서 근무한다면 어떨까?’라고 막연한 생각을 품기도 했고요."
"저도 그 영상 봤는데요. 일하는 문화뿐만 아니라 도시 전체가 차분해 보였어요. 긴박한 상황이 자주 발생하는 정훈 님의 업무와는 대조적인 분위기였죠."
"당장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일들을 하다 보니까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해결 방법만 제시하고 문제의 원인은 찾지 않는구나.’. 문제가 왜 발생했는지 살펴봐야 하는데 전혀 그러지 못하는 상황이에요. 수치 변화에 따른 대책만 마련하고 있죠. 굉장히 단순하게 일하는 느낌이에요. 일의 원인을 짚어 보려면 시간을 들여야 하는데 환경을 조성하기가 쉽지 않아요. 이야기했던 것처럼 회사 전체적으로 일을 진행하는 속도가 굉장히 빠르기 때문이에요. '어느새 나도 그 환경에 매몰되어 있는 건 아닐까?’ 생각하니, 상반된 환경에서 일한다면 다른 시각으로 문제를 볼 수 있지 않을까?' 싶은 거죠."
한 번 더 태어난다면 그때도 지금 하는 일을 하고 싶을까?
"궁극적으로 하고 싶은 일이 있어요. 콘텐츠를 만들고 싶어요."
"관련 경험이 있나요?"
"대학생 때, 영화와 다큐멘터리 영상을 찍고 싶어서 친구들과 영화 동아리 활동을 했어요. 스마트폰으로 단편 영화를 찍어 전주국제영화제에 출품도 했죠. 경쟁 부분에 뽑혀 영화제에서 상영될 때는 기뻤어요."
"어떤 이야기로 영화를 만들었는지 궁금해요."
"주제가 학교폭력이었어요. 일명 ‘빵 셔틀’이 사회 문제로 대두하기 시작할 때 찍었죠. ‘피해자의 행위가 가해자의 기대 수준을 넘어선다면 어떤 일이 펼쳐질까?’. 이런 경우예요. 가해자가 피해자에게 빵 사 오라고 시키면 피해자는 가해자의 집을 빵으로 가득 채우고요. 가해자가 전학을 갔는데 교실 맨 앞자리에 피해자가 앉아있는 거죠. 품에 빵을 안고요. 과장된 이야기로 보일 수 있지만 피해자가 이렇게까지 할 경우 ‘가해자는 과연 만족스러울까?’라는 질문을 던지고 싶었어요."
"만약 제가 빵 셔틀을 당한다면 영화 속 피해자처럼 복수하고 싶어요. 앞으로 창작할 기회가 생긴다면 어떤 콘텐츠를 만들고 싶어요?"
"글을 쓰고 싶어요. 소설 같은 이야기를요. 얼마 전에 소설 <침묵주의보>를 쓴 정진영 작가님의 북토크에 다녀왔어요. 작가님은 기자를 하다가 소설 작가가 된 분인데 이런 화두를 던지셨어요. 자신이 소설가가 되고 싶은지 아니면 소설을 쓰고 싶은지 판단하라고요. 모르겠다면 소설을 써보라고요. 긴 글을 쓸 수 있는 호흡을 가져야 소설가가 될 수 있다는 조언을 듣고 올해 목표를 정했어요. 장편 소설을 쓰는 것으로요. 제가 과연 긴 글을 쓸 수 있는 사람인지 확인하고 싶어요."
직업인으로서 자신을 설명할 수 있는 문장이 있을까?
"숫자는 거짓말하지 않는다’. 현장과 소통하면 현장에서는 본인들의 상황을 옹호하는 식으로 이야기할 때가 있어요. 그런데 숫자가 그에 동의하지 않는 경우가 있죠. 저도 영업 관리를 할 때 본사 담당자에게 ‘현장을 모르기 때문에 하는 말이다.’라고 이야기한 적이 있는데요. 데이터로 현장을 보니 현장 운영 결과가 고스란히 숫자로 나타났어요. 현장은 어렵지 않다고 숫자가 이야기하는 거죠. 라이더 분들이 배달을 거절하거나 너무 늦게 혹은 너무 빠르게 배달하는 경우들을 숫자가 다 말해 주는 거예요. ‘정말로 현장이 어렵다는 것을 본사에서 알아주길 바란다면 현장에서 먼저 제대로 실행해야 하지 않을까?'. 요즘 하는 생각이에요."
정훈 님이 일하는 이유
"얼마 전까지 일에 매몰되어 있었어요. 일 외의 것에는 전혀 관심 두지 않았죠. 어느 날 장인어른과 식사하면서 그분께 여쭤봤어요. 일과 삶의 균형을 맞추는 방법에 대해서요. 장인어른은 경찰이셨고, 직업 특성상 저보다 더 긴급한 일들을 많이 겪으셨는데요. 그럼에도 가족을 먼저 챙기셨거든요. 장인어른이 하신 말씀 중 가슴에 와닿은 이야기가 있어요. ‘살기 위해 일하는 것이 아니라 삶을 지탱하기 위해서 일한다.’. 그 말을 듣고 생각이 바뀌었어요. 아내를 보호하고 제 자아를 이루기 위해 일하는 것으로요. 일은 경제적인 문제를 해결하고 가족을 지킬 수 있는 도구라고요. 나아가 일 보다 일을 통해 얻은 성취와 보람이 제 삶을 이끄는 힘으로 작용한다고요. 결국 일은 부수적인 게 됐죠. 생각이 변하니까 일 때문에 짜증 나고 힘든 순간이 스트레스로 번지지는 않더라고요. 이 말이 맞는 표현인지 모르겠지만 제가 진짜 싸워야 하는 대상은 일이 아닌 거예요."
"정말 싸워야 하는 대상은 무엇인가요?"
"삶이죠. 일은 삶이라는 전쟁터에서 살아남기 위한 보급 창고라고 할까요?"
"무기인 셈이네요."
"맞아요."
"현재, 일과 관련해 가장 바라는 것이 있나요?"
"단기적인 목표를 이루기 위해 움직이고 있다고 인지한 상태라서요. 회사가 원시안을 가지고 문제를 바라보면 좋겠어요. 해결할 수 있는 시간도 넉넉하길 바라고요. 저는 사업을 확장하는 것만큼 기존 사업을 유지하는 것도 중요하다고 생각하는데요. 현황을 보고 있으면 사업을 확장할 경우 그것을 유지할 수 있을지 의문이 들어요. 이미 확장한 지역의 매출에 조금씩 균열이 발생하고 있거든요. 개인적인 측면에서도 의문이에요. 회사에서 주는, 언제까지 몇 퍼센트의 점유율을 달성해야 하는 것은 직장인의 목표 즉 제 역량 평가를 위한 목표인 것이고요. 서비스 기획자라는 직업인으로서, 해당 사업에 애정을 둔 입장에서는 달성한 목표를 유지하지 못하면 결국 일을 못한 것이라고 여기거든요."
일에서 책으로, 조금 더 나눈 이야기들
"실용서부터 문학까지, 다양한 분야의 책을 읽죠. 정훈 님은 왜 책을 읽나요?"
"영상 작업을 한 경험 덕에 책을 읽으면 머릿속에서 영상화가 이루어졌어요. 소설 장면들을 상상하는 재미에 빠져 책을 읽기 시작했죠. 상상할 수 있는 범위가 넓다는 것과 책의 물성도 마음에 들고요. 일로 인해 제 세계가 좁아지는 것을 경계하고 싶은 목적도 있어요. 일하다 보면 일 만 생각하니까요. 동료들과 대화를 나눌 때도 일 이야기 밖에 안 하더라고요. 그러다 보니 사용하는 단어가 한정적이에요. 원래는 책을 안 읽는 사람이었어요. 책보다는 사람을 통해서 얻는 것이 많다고 봤죠. 그런데 만나는 사람만 만나니까 역효과가 나더라고요. 생각의 범위가 줄어들었죠. ‘관점을 넓히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고민하던 중 발견한 매체가 책이었어요. 만나고 싶어도 만날 수 없는 사람을 책으로 만날 수 있었거든요. 책에 기록된 그 사람의 생각을 통해 그 사람을 만나는 거죠. 모르는 사람을 가장 쉽게 만날 수 있는 도구이기도 하고요. 이때부터 책을 많이 사기 시작했어요. 사는 양에 비해 책 읽는 속도는 느리지만요(웃음)."
"한 달에 몇 권 읽어요?"
"일주일에 한 권씩 읽으려고 해요. 책 두께에 따라 기간은 변하지만요(웃음). 여러 권을 나눠 읽기도 해요. 무거운 주제의 책을 읽다가 질리면 가벼운 내용의 책을 읽는 식으로요."
"책을 소화하는 본인만의 방식을 소개해 주세요."
"인스타그램에 생각과 감정을 기록하거나 책의 다음 이야기를 상상해요. 저는 책을 읽으면 약간 찝찝한 기분이 들어요. 찝찝하다는 표현이 안 좋은 의미는 아니에요. 무언가 남아있다는 뜻이죠. 저에게 생각할 틈을 준다고 할까요? 만약 제가 특정 상황 속에 빠진 어느 소설의 주인공이라면 ‘그 상황에서 나는 어떻게 할까?’ 상상하는 시간을 보내요. 사회 문제를 제기하는 이야기라면 ‘지금 그 문제는 어떻게 해결되고 있을까?' 궁금해서 자료를 찾아보는 거죠."
"더퍼슨스 책에 대해서도 묻고 싶어요. 퀀트편을 읽었죠. 첫인상이 어땠나요?"
"비슷한 콘셉트의 책들을 본 적 있어요. <제주의 3년 이하 이주민의 가게들>, <패스트트랙아시아 박지웅의 이기는 게임을 하라>. 인터뷰로 이야기하는 책들을요. 퀀트 편은 일단 어려웠어요. 주식 투자에 대해 아는 바가 없으니까요. 그래서 인터뷰이의 일하는 방식보다는 생각의 흐름을 봤어요. 결과를 내기까지 어떤 생각의 과정을 거쳤는지 살폈죠. 영웅담 같은 이야기가 없는 것도 좋았어요. 성공한 사람들이 지금의 위치에 오르기까지 수많은 과정을 거쳤을 텐데, 그때마다 어떤 판단을 하고 어떻게 실행했는지에 대해 소개하고 있었죠. 모르는 분야지만 이야기에 흐름이 있으니까 읽을 수 있었어요."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이야기
"직장인이 아닌 직업인이 되고 싶어요. 예전에는 직장이 저를 대변하는 듯했어요. 첫 회사에 입사할 당시에는 회사 인지도에 취해 있었죠. 대학교 졸업을 앞두고 있었고 이름을 들으면 누구나 아는 곳이었거든요. 이런저런 책과 콘텐츠를 보면서 직장에 속하지 않아도 멋있게 일하는 분들, 스스로 브랜드가 되어 일하는 분들이 많다는 것을 알게 됐어요. 그분들을 보며 직업인이 되려면 ‘나는 무엇을 업으로 삼아야 할지’ 돌아보게 됐죠. ‘만약 회사를 나온다면 그동안 쌓은 역량으로 어떤 일을 할 수 있을까?', ‘글 쓰는 사람이 됐을 때 해왔던 일의 능력을 어떻게 콘텐츠에 녹일 수 있을까?' 늘 생각해요."
서비스 기획 일을 계속할 수 있도록 만드는 정훈 님의 장점은 무엇일까?
"예외를 두지 않고 하나의 틀을 유지하려는 업무 방식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회사 기조를 바탕으로 영업 체계를 만드는 입장에서 예외를 받아들이면, 영업하시는 분들이 힘들어요. 바뀌는 기준에 따라 자꾸 말을 번복할 수밖에 없으니까요. 현장에서 회사를 대표하는 분들을 거짓말쟁이로 만들 수는 없죠."
"C-Level에서 예외성을 적용하라는 경우도 있지 않나요?"
"그럼 한 번은 물어봐요. 사업 콘셉트가 제가 생각하는 것과 같은 지를요. 제가 만든 서비스에는 해당 사업을 이해한 제 관점이 반영되어 있으니까요. 제가 착각했다면 고칠 필요가 있고요. 제가 제대로 이해하고 있지만 C-Leve에서 상황을 유연하게 보자고 이야기한다면 고집부리지는 않아요. 본사와 현장 사이에서 제가 장애요소가 될 수 있거든요."
"일을 방해하는 단점이 있을까요?"
"감정을 최대한 억누르려고 하는데 쉽지 않아요. 특히 회의할 때 그래요. 제 의견에 반대하는 입장이 나타나면 ‘왜 안 된다고 하는 거지?’라는 의문이 들면서 상대방에게 언성을 높이죠. 뒤돌아 후회하고요. ‘내 의견을 고수하기 위해서 그렇게까지 이야기할 필요가 있었을까?’. 제가 표현하고 싶은 대로 감정을 드러냈지만 기분이 좋지는 않아요. 반대 의견을 수용하는 게 어렵네요."
"저도 같아요. 일할 때 감정을 조절하는 일이 세상에서 제일 어려워요."
잠실, 선릉이 아닌 다른 곳에서 일할 수 있다면 정훈 님은 어디에서 일하고 싶을까?
"베를린이요. 일과 연관성은 없지만(웃음)."
"이유가 있겠죠(웃음)."
"새로운 서비스를 구상하려면 새로운 아이디어가 필요한데요. 새로운 환경이 도움을 주지 않을까 싶어요. 명확하게 설명할 수 없지만 베를린이 그에 적합한 환경을 갖추었다고 보고요."
"베를린을 경험한 적 있나요?"
"신혼여행 때요(웃음). 베를린에서 일하는 한국인들의 이야기를 다룬 <요즘사> 콘텐츠를 보면서 ‘저런 환경에서 근무한다면 어떨까?’라고 막연한 생각을 품기도 했고요."
"저도 그 영상 봤는데요. 일하는 문화뿐만 아니라 도시 전체가 차분해 보였어요. 긴박한 상황이 자주 발생하는 정훈 님의 업무와는 대조적인 분위기였죠."
"당장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일들을 하다 보니까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해결 방법만 제시하고 문제의 원인은 찾지 않는구나.’. 문제가 왜 발생했는지 살펴봐야 하는데 전혀 그러지 못하는 상황이에요. 수치 변화에 따른 대책만 마련하고 있죠. 굉장히 단순하게 일하는 느낌이에요. 일의 원인을 짚어 보려면 시간을 들여야 하는데 환경을 조성하기가 쉽지 않아요. 이야기했던 것처럼 회사 전체적으로 일을 진행하는 속도가 굉장히 빠르기 때문이에요. '어느새 나도 그 환경에 매몰되어 있는 건 아닐까?’ 생각하니, 상반된 환경에서 일한다면 다른 시각으로 문제를 볼 수 있지 않을까?' 싶은 거죠."
한 번 더 태어난다면 그때도 지금 하는 일을 하고 싶을까?
"궁극적으로 하고 싶은 일이 있어요. 콘텐츠를 만들고 싶어요."
"관련 경험이 있나요?"
"대학생 때, 영화와 다큐멘터리 영상을 찍고 싶어서 친구들과 영화 동아리 활동을 했어요. 스마트폰으로 단편 영화를 찍어 전주국제영화제에 출품도 했죠. 경쟁 부분에 뽑혀 영화제에서 상영될 때는 기뻤어요."
"어떤 이야기로 영화를 만들었는지 궁금해요."
"주제가 학교폭력이었어요. 일명 ‘빵 셔틀’이 사회 문제로 대두하기 시작할 때 찍었죠. ‘피해자의 행위가 가해자의 기대 수준을 넘어선다면 어떤 일이 펼쳐질까?’. 이런 경우예요. 가해자가 피해자에게 빵 사 오라고 시키면 피해자는 가해자의 집을 빵으로 가득 채우고요. 가해자가 전학을 갔는데 교실 맨 앞자리에 피해자가 앉아있는 거죠. 품에 빵을 안고요. 과장된 이야기로 보일 수 있지만 피해자가 이렇게까지 할 경우 ‘가해자는 과연 만족스러울까?’라는 질문을 던지고 싶었어요."
"만약 제가 빵 셔틀을 당한다면 영화 속 피해자처럼 복수하고 싶어요. 앞으로 창작할 기회가 생긴다면 어떤 콘텐츠를 만들고 싶어요?"
"글을 쓰고 싶어요. 소설 같은 이야기를요. 얼마 전에 소설 <침묵주의보>를 쓴 정진영 작가님의 북토크에 다녀왔어요. 작가님은 기자를 하다가 소설 작가가 된 분인데 이런 화두를 던지셨어요. 자신이 소설가가 되고 싶은지 아니면 소설을 쓰고 싶은지 판단하라고요. 모르겠다면 소설을 써보라고요. 긴 글을 쓸 수 있는 호흡을 가져야 소설가가 될 수 있다는 조언을 듣고 올해 목표를 정했어요. 장편 소설을 쓰는 것으로요. 제가 과연 긴 글을 쓸 수 있는 사람인지 확인하고 싶어요."
직업인으로서 자신을 설명할 수 있는 문장이 있을까?
"숫자는 거짓말하지 않는다’. 현장과 소통하면 현장에서는 본인들의 상황을 옹호하는 식으로 이야기할 때가 있어요. 그런데 숫자가 그에 동의하지 않는 경우가 있죠. 저도 영업 관리를 할 때 본사 담당자에게 ‘현장을 모르기 때문에 하는 말이다.’라고 이야기한 적이 있는데요. 데이터로 현장을 보니 현장 운영 결과가 고스란히 숫자로 나타났어요. 현장은 어렵지 않다고 숫자가 이야기하는 거죠. 라이더 분들이 배달을 거절하거나 너무 늦게 혹은 너무 빠르게 배달하는 경우들을 숫자가 다 말해 주는 거예요. ‘정말로 현장이 어렵다는 것을 본사에서 알아주길 바란다면 현장에서 먼저 제대로 실행해야 하지 않을까?'. 요즘 하는 생각이에요."
정훈 님이 일하는 이유
"얼마 전까지 일에 매몰되어 있었어요. 일 외의 것에는 전혀 관심 두지 않았죠. 어느 날 장인어른과 식사하면서 그분께 여쭤봤어요. 일과 삶의 균형을 맞추는 방법에 대해서요. 장인어른은 경찰이셨고, 직업 특성상 저보다 더 긴급한 일들을 많이 겪으셨는데요. 그럼에도 가족을 먼저 챙기셨거든요. 장인어른이 하신 말씀 중 가슴에 와닿은 이야기가 있어요. ‘살기 위해 일하는 것이 아니라 삶을 지탱하기 위해서 일한다.’. 그 말을 듣고 생각이 바뀌었어요. 아내를 보호하고 제 자아를 이루기 위해 일하는 것으로요. 일은 경제적인 문제를 해결하고 가족을 지킬 수 있는 도구라고요. 나아가 일 보다 일을 통해 얻은 성취와 보람이 제 삶을 이끄는 힘으로 작용한다고요. 결국 일은 부수적인 게 됐죠. 생각이 변하니까 일 때문에 짜증 나고 힘든 순간이 스트레스로 번지지는 않더라고요. 이 말이 맞는 표현인지 모르겠지만 제가 진짜 싸워야 하는 대상은 일이 아닌 거예요."
"정말 싸워야 하는 대상은 무엇인가요?"
"삶이죠. 일은 삶이라는 전쟁터에서 살아남기 위한 보급 창고라고 할까요?"
"무기인 셈이네요."
"맞아요."
"현재, 일과 관련해 가장 바라는 것이 있나요?"
"단기적인 목표를 이루기 위해 움직이고 있다고 인지한 상태라서요. 회사가 원시안을 가지고 문제를 바라보면 좋겠어요. 해결할 수 있는 시간도 넉넉하길 바라고요. 저는 사업을 확장하는 것만큼 기존 사업을 유지하는 것도 중요하다고 생각하는데요. 현황을 보고 있으면 사업을 확장할 경우 그것을 유지할 수 있을지 의문이 들어요. 이미 확장한 지역의 매출에 조금씩 균열이 발생하고 있거든요. 개인적인 측면에서도 의문이에요. 회사에서 주는, 언제까지 몇 퍼센트의 점유율을 달성해야 하는 것은 직장인의 목표 즉 제 역량 평가를 위한 목표인 것이고요. 서비스 기획자라는 직업인으로서, 해당 사업에 애정을 둔 입장에서는 달성한 목표를 유지하지 못하면 결국 일을 못한 것이라고 여기거든요."
일에서 책으로, 조금 더 나눈 이야기들
"실용서부터 문학까지, 다양한 분야의 책을 읽죠. 정훈 님은 왜 책을 읽나요?"
"영상 작업을 한 경험 덕에 책을 읽으면 머릿속에서 영상화가 이루어졌어요. 소설 장면들을 상상하는 재미에 빠져 책을 읽기 시작했죠. 상상할 수 있는 범위가 넓다는 것과 책의 물성도 마음에 들고요. 일로 인해 제 세계가 좁아지는 것을 경계하고 싶은 목적도 있어요. 일하다 보면 일 만 생각하니까요. 동료들과 대화를 나눌 때도 일 이야기 밖에 안 하더라고요. 그러다 보니 사용하는 단어가 한정적이에요. 원래는 책을 안 읽는 사람이었어요. 책보다는 사람을 통해서 얻는 것이 많다고 봤죠. 그런데 만나는 사람만 만나니까 역효과가 나더라고요. 생각의 범위가 줄어들었죠. ‘관점을 넓히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고민하던 중 발견한 매체가 책이었어요. 만나고 싶어도 만날 수 없는 사람을 책으로 만날 수 있었거든요. 책에 기록된 그 사람의 생각을 통해 그 사람을 만나는 거죠. 모르는 사람을 가장 쉽게 만날 수 있는 도구이기도 하고요. 이때부터 책을 많이 사기 시작했어요. 사는 양에 비해 책 읽는 속도는 느리지만요(웃음)."
"한 달에 몇 권 읽어요?"
"일주일에 한 권씩 읽으려고 해요. 책 두께에 따라 기간은 변하지만요(웃음). 여러 권을 나눠 읽기도 해요. 무거운 주제의 책을 읽다가 질리면 가벼운 내용의 책을 읽는 식으로요."
"책을 소화하는 본인만의 방식을 소개해 주세요."
"인스타그램에 생각과 감정을 기록하거나 책의 다음 이야기를 상상해요. 저는 책을 읽으면 약간 찝찝한 기분이 들어요. 찝찝하다는 표현이 안 좋은 의미는 아니에요. 무언가 남아있다는 뜻이죠. 저에게 생각할 틈을 준다고 할까요? 만약 제가 특정 상황 속에 빠진 어느 소설의 주인공이라면 ‘그 상황에서 나는 어떻게 할까?’ 상상하는 시간을 보내요. 사회 문제를 제기하는 이야기라면 ‘지금 그 문제는 어떻게 해결되고 있을까?' 궁금해서 자료를 찾아보는 거죠."
"더퍼슨스 책에 대해서도 묻고 싶어요. 퀀트편을 읽었죠. 첫인상이 어땠나요?"
"비슷한 콘셉트의 책들을 본 적 있어요. <제주의 3년 이하 이주민의 가게들>, <패스트트랙아시아 박지웅의 이기는 게임을 하라>. 인터뷰로 이야기하는 책들을요. 퀀트 편은 일단 어려웠어요. 주식 투자에 대해 아는 바가 없으니까요. 그래서 인터뷰이의 일하는 방식보다는 생각의 흐름을 봤어요. 결과를 내기까지 어떤 생각의 과정을 거쳤는지 살폈죠. 영웅담 같은 이야기가 없는 것도 좋았어요. 성공한 사람들이 지금의 위치에 오르기까지 수많은 과정을 거쳤을 텐데, 그때마다 어떤 판단을 하고 어떻게 실행했는지에 대해 소개하고 있었죠. 모르는 분야지만 이야기에 흐름이 있으니까 읽을 수 있었어요."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이야기
"직장인이 아닌 직업인이 되고 싶어요. 예전에는 직장이 저를 대변하는 듯했어요. 첫 회사에 입사할 당시에는 회사 인지도에 취해 있었죠. 대학교 졸업을 앞두고 있었고 이름을 들으면 누구나 아는 곳이었거든요. 이런저런 책과 콘텐츠를 보면서 직장에 속하지 않아도 멋있게 일하는 분들, 스스로 브랜드가 되어 일하는 분들이 많다는 것을 알게 됐어요. 그분들을 보며 직업인이 되려면 ‘나는 무엇을 업으로 삼아야 할지’ 돌아보게 됐죠. ‘만약 회사를 나온다면 그동안 쌓은 역량으로 어떤 일을 할 수 있을까?', ‘글 쓰는 사람이 됐을 때 해왔던 일의 능력을 어떻게 콘텐츠에 녹일 수 있을까?' 늘 생각해요."
"생각보다 인터뷰를 오래 했네요(웃음). 대화 나눈 소감을 듣고 싶어요."
"무슨 말을 했는지 모르겠어요. 질문에 맞는 답을 했나요(웃음)?"